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 자크 루소 (문단 편집)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 >좋은 날씨가 나를 이끌 때면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직 식탁에 앉아 있는데도 나는 거기서 빠져나와 혼자 배에 몸을 싣고, 물결이 잔잔할 때는 호수 한가운데로 저어 가고는 했다. 그러고는 호수 한복판에 이르러 배 안에서 다리를 길게 쭉 뻗고 누워서 시선은 하늘을 향한 채, 물결에 따라 천천히 배가 떠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는 했다. 때로는 여러 시간 잡다하지만 감미로운 수많은 몽상들에 빠지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확실하게 한정되거나 일정한 대상에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사람들이 삶의 기쁨들이라고 부르는 것 중 내가 가장 달콤하다고 생각했었던 모든 것보다도 백배나 더 나은 것이었다. 종종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돌아가야 할 시간임을 알게 되면, 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야만 했다. 어떤 때는 호수 한복판까지 나가는 대신에 섬의 푸르른 연안을 따라 배를 저어가는 것을 즐기고는 했는데, 그 맑은 물과 시원한 녹음에 이끌려 종종 거기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중략) > >호수가 잔잔하지 않아 배를 탈 수 없을 때면 나는 오후 동안 섬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에서 식물을 채집하거나, 가장 경치가 좋고 한적한 곳에 앉아 나 좋을 대로 마음껏 몽상을 하거나, 때로는 대지나 작은 언덕 위에 앉아 호수와 그 기슭의 멋지고 매혹적인 경치를 둘러보고는 했다. 저녁이 가까워져오면, 나는 섬의 정상에서 내려와 호숫가 모래밭에 숨겨진 안식처로 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물결의 소리와 수면의 출렁임이 나의 감각을 안정시켜주고 나의 영혼으로부터 모든 다른 동요를 쫓아내버려 감미로운 몽상 속으로 빠져들도록 했으며, 그런 몽상에 빠져 있다 보면 종종 나도 모르는 사이 불시에 밤이 찾아오고는 했다. 호수의 밀물과 썰물, 연속적이면서도 간간이 더 커지는 그 소리는 쉴 새 없이 나의 귀와 눈을 자극함으로써 몽상이 내 안에서 꺼버린 내면의 움직임을 대신해주었으며, 나로 하여금 생각하는 수고로움 없이 즐겁게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가끔 이 세상 사물의 무상함에 대한 희미하고 짧은 성찰이 떠오르고는 했으며, 호수의 수면은 나에게 그 무상함의 이미지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가벼운 인상들은 곧 호수의 연속적 움직임이 지닌 단조로움 속으로 사라지고는 했다. 그런 단조로움은 나를 달래주었고, 내 영혼의 아무런 적극적인 협력 없이도 나를 몰두하게 만드는 바람에 시간과 정해진 신호에 재촉을 받고서도 그로부터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중략) > >지상에서 만물은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다. 그 속에서는 아무것도 하나의 변함 없는 정지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며, 외부의 사물들에 집착하는 우리의 감정들도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지나가고 변화한다. 감정들은 언제나 우리를 앞서거나 뒤따라오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상기시키거나 종종 전혀 있을 수 없는 미래를 예고한다. 그것들에는 마음을 붙일 만큼 견고한 것이라곤 전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지나가는 기쁨밖에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지속성 있는 행복에 대해서는, 나는 과연 누군가가 그것을 맛보았을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맛보는 가장 강렬한 즐거움 중에서도,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나는 이 순간이 항상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한순간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을 여전히 불안하고 공허한 상태로 놔두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이전에 있던 뭔가를 애석해하거나 앞으로 올 뭔가를 바라게 만드는 순간적인 상태를 어떻게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 >그런데 행복이란 것이, 영혼이 온전히 쉴 수 있으며 과거를 회상할 필요도 없고 미래에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스스로의 온 존재를 집결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견고한 토대를 발견할 수 있는 상태라면, 현재가 그 지속성을 드러내지 않고 그것이 연속되고 있다는 흔적도 없이, 또한 우리가 존재한다는 느낌 말고는 그 어떤 결핍이나 향유, 기쁨이나 고통, 욕망이나 두려움의 느낌도 없이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라면, 그리고 그런 느낌만이 영혼을 온전히 가득 채울 수 있는 상태라면,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지속되는 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행복은 삶의 기쁨들 중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불완전하고 빈약하고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영혼이 가득 채워야 할 필요를 느끼는 그 어떤 공허함도 영혼 속에 남겨두지 않는 충분하고 완벽하고 충만한 행복이다. 그런 상태야말로 내가 생피에르 섬에서 물결에 따라 방향이 바뀌는 대로 놓아둔 배 안에 누워서, 물결이 출렁이는 호숫가나 아름다운 강가나 자갈 위로 물이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앉아서, 나의 고독한 몽상들에 잠기어 처해 있곤 했던 상태이다. >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즐기는 것일까? 자기 외부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존재일 뿐이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는 한, 사람은 마치 신처럼 스스로 족하다. 모든 다른 감정이 없어져버린 그런 존재감은 그 자체로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소중한 감정이며,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고 그 감미로움을 혼탁하게 만드는 이 세상의 온갖 관능적이고 세속적인 인상을 멀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런 감정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고 기분 좋은 것이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끊임없는 정념에 동요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태를 거의 모른다. 또한 아주 짧은 동안 불완전하게밖에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어렴풋하고 불명료한 생각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그런 감미로운 황홀경을 갈망하여, 항상 되살아나는 그들의 욕구가 의무로 부과하는 활동적인 삶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면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다섯 번째 산책 [* 장 자크 루소 저, 조명애 역,『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서울, 은행나무, 2014, p.110~116.] 솔직한 자기 고백과 자유 추구, 개인 내면의 감성을 중시하면서 자연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이 책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프랑스 문학이 낳은 불후의 산문시로 일컬어지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인 샤토브리앙, 라마르틴, 위고, 르콩트드릴은 물론 괴테, 실러와 같은 독일 작가들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준 작품이다. 그 중 「다섯 번째 산책」은 가장 유명한 부분으로, 루소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스위스 생피에르 섬에서의 일상생활을 회상한다. 루소가 말하는 "문명에서 벗어난 자연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으며, 글 자체도 워낙 좋아서 한 번쯤은 읽어볼만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